‘서순라길 81’. 종로3가역 8번 출구를 나와 정면에 보이는 돌담을 따라 쭉 걸으면 발견할 수 있는 자그마한 북카페 <파이키(Fikee)>의 주소다. 파이키를 이야기할 땐 이 주소를 빼놓고 시작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많은 파인더(파이키에서는 고객을 ‘파인더(Finder)’라고 부른다)가 파이키를 찾아온 이유는 이 아름다운 길이 전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겸손 떨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이토록 인상적인 길을 처음 만나고 부동산에서 열쇠를 받던 순간까지 파이키라는 이름은 물론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뛰어난 브랜딩의 조건을 치밀하게 짜인 전략이나 단순한 메뉴, 직관적인 이미지라고 말한다면 파이키는 아쉽게도 이를 충족하지 않는다. 파이키는 어떠한 전략이나 구상 없이 시작된 공간이다. 커피, 차, 술, 디저트와 안주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고 할 정도로 다채로운 메뉴에 다양한 책까지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며, 이러한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과정인 지금도 우리 키퍼(파이키에서는 직원을 ‘키퍼Keeper’라고 부른다)들은 방황하고 있다.
그럼에도 파인더들이 이 공간을 찾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그들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돌담길 위 발 디딜 작은 공간을 얻고 난 후 키퍼들이 치열하게 고민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파이키라는 공간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Finders keepers. 찾는 사람이 임자.
‘Fikee’라는 이름은 영미권 속담 ‘Finders keepers’의 줄임말로 ‘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뜻이다. 파이키의 브랜딩은 이 문장 안에서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에 이것이 이곳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공간 기획 당시 ‘어떤 메뉴를 판매할 것인가’,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상권과 월세를 고려했을 때 목표 매출은 얼마 정도로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테이블 수와 회전율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같은 문제는 고민하지 않았다.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 치고는 아주 위험한 시작을 한 셈이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은 이유는 나름 명확했다. 전국 곳곳의 카페를 탐방하며 커피와 디저트를 섭렵한 후 느낀 바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세상엔 맛있는 커피와 놀라운 디저트가 정말 많고, 우리는 그런 것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메시지와 스토리에 집중했다. 하고 싶은 말을 우리만의 표현으로 전한다면 분명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자연스레 이곳으로 모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은 이 작은 공간의 브랜딩이 시작된 지점이다.
예전부터 공간을 운영하게 된다면 꼭 책을 다루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텍스트가 지닌 가치와 이미지가 좋았고 그것이 커피와 만났을 때의 힘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와 키퍼들은 커피와 책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가치를 어떤 메시지로 표현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이끌어 낸 파이키의 키워드는 바로 ‘발견(find)’. 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됨에 따라 이전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우리는 읽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발견이라고 해석했고 그 지점에서 ‘Finders keepers’라는 환상적인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귀를 이리저리 조합하며 상호를 결정하고 다음과 같은 파이키만의 메시지를 마련했다.
‘Hi finders! 파이키는 책과 음료를 즐기며 일상 속 작은 탐험을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중략) 신대륙을 발견하는 탐험가들처럼, 일상 곳곳에 눈길을 주는 우리는 모두 탐험가! 이곳에서의 발견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보다 다채로워지면 좋겠습니다.’
감히 브랜딩이 무엇이라 말하기에는 경험도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간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어쩌면 그래서 메시지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철없고 경험 부족한 자의 패기 같은 거랄까. 하지만 이제 막 첫돌을 넘긴 파이키와 이곳을 가득 채운 파인더들의 모습을 보면 마냥 오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깊게 고뇌하는 가치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브랜딩의 첫걸음이 아닐까.
물론 이것만으로 브랜딩이 완성되었다곤 할 수 없다. 공간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난 뒤 우리는 집요함을 견지하려 했다. 메시지와 공간을 끝까지 물고 뜯어 파이키의 구석구석은 물론 키퍼들의 행위에까지 정체성을 담아내는 것. 우리는 그것을 집요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위 ‘콘셉트에 충실하기’와 비슷한 자세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파이키가 어떻게 집요함을 실천하고 가치를 확장해 가고 있는지, 1년이라는 시간 안에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는 ‘실전편’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