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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리더] 나의 브랜딩 일지 - 실전편

전문가 칼럼

[트렌드리더] 나의 브랜딩 일지 - 실전편
Trend R(L)eader: 트렌드 파악은 업계의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 역량. 커피시장에 새롭게 등장하거나 꾸준히 언급되어 온 화두에 관해 논쟁이 아닌, 공론의 장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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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라면, 브랜딩은 사업에 사회적 가치를 담는 작업이 아닐까. 이것은 브랜딩의 의미를 깊이 고민한 끝에 키퍼들이 내린 결론이다(<파이키(Fikee)>에선 공간 운영자를 ‘키퍼(Keeper)’, 고객을 ‘파인더(Finder)’라고 부른다). 파이키는 10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키퍼들은 그 안에 파이키만의 집요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알차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보이는 곳부터

브랜드 메시지를 백 번 소리친다고 브랜딩에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수시로 이야기할 때 고객들이 알아준다고 생각했다. 고객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고 가벼운 방식으로 남겨둔 까닭이다.

먼저 와이파이에 주목했다. 카페를 방문한 고객들이 흔히들 찾는 것이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와이파이 이름을 ‘당신은 파인더인가요?’라는 뜻의 ‘Are you finders?’로 바꾸고 비밀번호를 ‘네, 맞아요!’라는 의미의 ‘yes, I am:3’으로 설정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발견한 고객들은 한 사람의 파인더로서 일행에게 이를 공유하며 그들 또한 파인더가 되게 한다. 모든 좌석에 메모지와 연필을 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브랜드 가치인 ‘발견’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선 반드시 쓰는 행위가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모지 상단에는 상호의 의미 ‘찾는 사람이 임자’를 인쇄해 파이키만의 색깔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여느 카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쿠폰이다. 남발되어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하거나 지갑 한편의 짐으로 남지 않는, 고객에게 가치 있는 쿠폰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탐험 카드’를 만들었다. 별명과 MBTI, 인스타그램 아이디, 자신이 발견한 것과 좋아하는 것을 적을 수 있는 작은 카드다. 파인더들이 탐험 카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이모저모를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완성한 탐험 카드는 공간에 마련된 보관함에 두고 갈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MBTI별로 분류함으로써 유사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서로의 발견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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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까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도 ‘탐험과 발견’이라는 파이키의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그것이 우리가 브랜딩에 있어 중요시하는 ‘집요함’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파인더들이 집요함을 알아채는 순간 느낄 희열이 브랜딩을 강화해 줄 것이라 믿어서였다.

원두 납품사를 고민할 때도 이를 염두에 두어 ‘블랙로드커피’를 선택했다. ‘완벽한 한잔이 아니라, 다양한 커피를 원합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환상적인 커피의 탐험’을 지향하는 브랜드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유니폼에 거대한 나침반을 새기고 파이키처럼 탐험을 지향하 는 이들의 원두라면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원과 고객의 관계는 가게 지킴이이자 탐험을 안내하는 키퍼와 일상을 탐험해 나가는 파인더로 설정했다. 이 둘을 합치면 ‘finders, keepers(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브랜드 메시지와 ‘Fikee’라는 이름이 된다. 파이키만의 관계 설정이 낳은 효과는 다양하다. 먼저 키퍼들이 파인더를 접객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단순히 대가를 받고 정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한 명 한 명을 탐험가로 여기며 그들을 위한 휴식과 탐험의 조력자가 되고자 노력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파이키에 처음 방문하는 고객도 기꺼이 파인더가 되어 열린 마음으로 탐험에 나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별한 친밀감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파이키가 고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데엔 이 특별한 관계가 주효했다.

또한 파이키는 보다 심화한 탐험을 원하는 파인더를 위해 온라인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름하야 ‘Daily Find Club’, 직역하면 ‘일상 발견 클럽’이다. 책을 비롯한 다양한 탐험과 발견을 기록하고 인증하는 프로그램으로, 클럽 입단 조건에 발견이라는 키워드를 녹여냈다. 파이키라는 공간을 발견했다면 첫 단계는 통과다. 그다음으로는 키퍼들이 공간에 숨겨둔 클럽 가입 열쇠를 찾아야 한다. 고양된 탐험심으로 공간 구석구석을 누벼야만 클럽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이는 발견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파인더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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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사람이 임자가 될 수 있도록

파이키의 출입문 손잡이 아래에는 ‘이 문을 열면 탐험이 시작된다’라는 글귀가 있다. 파이키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누구든 파인더가 될 수 있다.

공간에는 키퍼들이 준비한 것뿐 아니라 파인더들이 남겨둔 발견의 흔적도 정말 많다. 외면받은 포켓몬의 모임(인기가 덜한 포켓몬빵 띠부띠부씰을 공간 한편에 붙여둘 수 있게 한 콘텐츠)이나 잃어버린 장갑들의 모임, 벽 귀퉁이나 책 사이사이에 파인더들이 자발적으로 숨겨둔 쪽지 등을 보면 ‘파인더들이 나누고 싶어 하는 발견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로소 브랜드 메시지가 일방적인 전달을 넘어 공유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파이키는 파인더들이 일상 속 탐험에서 발견한 것들을 공유하고, 지칠 때 힘을 충전해 다시 탐험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흥미진진하고 치열할 우리 모두의 탐험에 늘 기분 좋은 발견이 가득하길 바란다. 그것이 어떤 발견이든, 찾는 사람이 임자니까.



 <파이키> 이태정 키퍼
사진  월간커피 DB, <파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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