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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커피를 바라보는 방법

전문가 칼럼

코로나19 이후, 커피를 바라보는 방법 커피에서 느껴지는 시나몬, 춘장, 장아찌 향미에 대하여
커피 제3의 물결을 이끌었던 스페셜티 커피의 핵심은 ‘특별함’이었다. 이와 중첩되고 있는 커피 제4의 물결은 ‘산지와 소비국의 밀착’ 혹은 ‘투명성’으로 설명됐지만, 그 투명성은 다소 왜곡되고 있다. 더군다나 자극적이고 몹시 선명한 향미 노트를 지닌 커피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산지 환경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커피시장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이는 이 흐름 속에서 왜곡과 자극을 제대로 판단하는 수단은 ‘커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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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향미, 독특한 뉘앙스VS 자극과 왜곡, 이취

2023년 2월 현재의 커피업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가공의 홍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가공법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첨가하고 제한하는 등의 변주를 거친 무수한 가공법이 등장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커피들을 잘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커핑의 중요성이 또 한 번 강조되는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의 핵심은 빼어난 향미로, 이는 보통 과일에 빗대어진다. 과일 향미를 지닌 커피는 대체로 특별한 커피로 여겨지며 과일의 산미와 단맛을 지닌 커피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향신료 뉘앙스도 강도에 따라 뛰어난 향미로 인지되는데, 독특한 뉘앙스로 커피의 전반적인 향미를 끌어올리거나 잘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많은 이가 과일의 뉘앙스와 꽃향기를 지닌 커피에 환호하기 시작했고, 게이샤는 그 정점에 있는 품종으로 이목을 끌었다. 현재 전 세계 COE 상위권을 독차지하는 품종은 단연 게이샤이며, 이 밖의 몇몇 품종 또한 빼어난 향미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이샤가 훌륭한 향미를 지닌 것은 아니기에 테루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전 세계 많은 커피인이 눈에 불을 켜고 또 다른 빼어난 커피를 찾고 있다. 이처럼 더욱 뚜렷하고 확실한 뉘앙스를 지닌 커피에 대한 수요에 따라 다양한 가공법이 개발됐다.

생산자들은 전통적인 커피 가공법에 와인, 맥주 등의 가공법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존에 없었던 향미의 커피가 ‘빼어남’이라는 가면을 쓰고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커피인들이 찾아 헤매던 과일이나 꽃의 뉘앙스가 아니라 강력한 시나몬, 춘장 혹은 깻잎이나 고수 등의 뉘앙스를 지닌 커피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향미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다른 분야의 사례를 살펴보면 정답은 금세 추론할 수 있다. 먼저 ‘시나몬’은 커피와 아주 밀접한 부재료 중 하나로 카푸치노에 곁들여지는 향신료다. 본래 자체적인 향신료 뉘앙스를 지닌 인도네시아 계통의 품종들도 있는데 이들을 에스프레소로 추출해 우유와 섞으면 엄청난 향미가 발현된다. 여기에 착안한 가공법에서는 커피에 시나몬을 바른 채로 가공한다. 시나몬은 당분이 없고 벌레가 기피하는 향을 지닌 덕에 별다른 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커피를 완성할 수 있다. 완성된 커피에서는 당연히 시나몬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무산소 발효가 화제가 됐던 초반에는 시나몬 향미가 무산소 발효 커피 고유의 특성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는 일반화의 오류다.

두 번째로 ‘춘장’은 콩이 발효됨에 따라 형성된 특유의 구수한 뉘앙스에 소금, 밀가루 등이 첨가되면서 만들어지는 뉘앙스다. 커피에서 나타나는 짜장, 짜장라면 스프 등의 뉘앙스는 모두 춘장이라는 표현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커피가 본래 지닌 향미가 아니라 발효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향미로 파악된다. 커피에 일부러 이 향미를 덧입히기 위해 가공 과정 중 춘장을 더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춘장의 뉘앙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커피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춘장 느낌이 감지됐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춘장의 뉘앙스를 지닌 커피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를 구매하는 사람 또한 존재할 테다. 하지만 춘장은 잘못 발현된 향미로 보는 것이 옳다. 커피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특정 곰팡이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과도한 발효취가 생성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이는 부정적인 향미, 오프플레이버Off Flavor(이취(異臭))로 간주해야 한다. 이취는 말 그대로 ‘다른 냄새’라는 뜻으로 맥주나 와인의 평가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다. 맥주에는 다양한 이취가 존재하는데, 발효 과정 중 산소와 접촉했을 때(오래된 종이, 젖은 박스), 발효 중 효모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버터 향), 햇볕이 맥주에 직접 닿았을 때(시궁창 냄새) 등의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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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업계는 지금까지 부정적 향미 발현에 지극히 관대했다. 불완전한 가공 과정에서 탄생한 발효취를 특별함으로 간주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커핑 단계에서 이를 엄격하게 걸러내야 한다. 특별한 커피와 자극적 혹은 왜곡된 커피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이야기한 춘장 향미를 예로 들면, 이 뉘앙스를 지닌 커피는 평가 시 감점하거나 평가를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 번째로 ‘깻잎’ 혹은 ‘깻잎장아찌’, ‘장아찌류’로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에만 자생하는 깨는 외국인들에겐 낯선 뉘앙스로, 고수나 향채로 대체하여 설명하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는 채소류 혹은 허브류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만약 깻잎 뉘앙스를 지닌 커피가 있다면 그 향미를 허브류의 한 종류나 허브와 향신료의 조합으로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장아찌류로 인지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장아찌류는 깻잎이 간장, 된장과 함께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현된 발효취가 더해진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과도한 허브류의 커피향미는 부정적 뉘앙스로 판단된다. 깻잎 자체도 과도함과 적절함의 경계에 속하는 식물이기에 여기에 간장이나 된장의 발효취까지 더해지면 두말할 것 없이 이취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이 밖의 허브류와 장의 뉘앙스가 합쳐진 향미가 관찰되는 경우는 어떨까. 이를 싱그러운 허브류로 평가할지 아니면 과도한 발효취가 더해진 장아찌로 구분할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효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식문화로 인해 춘장과 깻잎, 장아찌류를 비교적 관대하게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커피에서 발현되는 발효취는 다소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발효취는 정도에 따라 극도의 감칠맛이 될 수도, 썩어가는 시점에서 발현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커핑 풍토에 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월간커피 2023년 3월호 ‘스페셜뷰’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석예술대학교' 송호석 교수
사진  '백석예술대학교' 송호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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