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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리더] 산지 방문 무용론

전문가 칼럼

[트렌드리더] 산지 방문 무용론
Trend R(L)eader: 트렌드 파악은 업계의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 역량. 커피시장에 새롭게 등장하거나 꾸준히 언급되어 온 화두에 관해 논쟁이 아닌, 공론의 장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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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산지에 자주 다닐 수 있어서 좋겠다” 혹은 “나도 머지않아 산지에 꼭 방문하고 싶다”라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산지 방문을 꿈꾸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가고 싶은가?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려 한다. 산지 방문의 기술적 무용론, 바로 정신적(Spirit)인 의미를 찾아보자는 접근법이다.

많은 이가 산지에 가면 배울 것이 많으리라고 막연히 기대한다. 말로만 듣던 커피나무를 직접 마주하고, 신선한 커피체리를 먹어보며, 광활하게 펼쳐진 커피 농지를 바라보면서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어떤 산지와 농장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집에서 책이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통해 산지를 경험한다면 실제로 갈 때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 쉽게 올라가기 힘든 고산지대를 자세히 촬영한 사진을 편하게 볼 수 있고, 며칠 정도 방문해서는 모두 살필 수 없는 가공 과정에 대해 단계별로 세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또한 시기별 농장의 변천사까지도 손가락 하나만으로 쉽게 볼 수 있으니, 한두 번 산지에 방문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반드시 산지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기술적 의미가 아닌, 정신적인 의미 때문이다. 종교가 없음에도 종교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때가 있었다. 필자가 ‘커피교’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다시 말해 처음 커피에 발을 들였을 시기다. 불교인이 인도를 방문하고 기독교인이 예루살렘을 찾듯이, 커피인이 된 필자도 꼭 한 번은 산지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었다.

그런데 힘든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소요해 처음 산지를 방문했을 때의 감흥은 기대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농부와의 의미 없는 대화는 답답했다. 첫 방문을 통해 얻은 것은 버킷리스트 하나를 해결했다는 만족감 정도였다. 들어간 돈과 시간이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언할 수 있다. 그 작은 출발이 지금의 내 커리어를 완성해 주고, 10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즐겁게 커피를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줬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창한 지식을 얻지는 못했지만 커피인에게는 ‘성지 방문’과 같은 ‘산지 방문’을 마친 뒤의 나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한 잔의 커피를 대하는 모습이 바뀌어 있었고, 그간 걸어온 커피의 길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앞으로 커피와 함께 걸어갈 미래를 꿈꾸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인들에게 찾아오는 일생일대의 영적인 순간과 비견할 만하다고 믿는다.

어느 신문에서 읽은 한 유명 야구선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한 선수에게 사인볼 하나와 함께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를 받았는데, 이 순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경험했고, 내가 다른 커피인에게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 일화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산지에 가보고 싶다는 이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커피산지를 방문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별 의미 없는 단순한 여행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여행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누군가’일까?



 '커피미업' 김동완 대표 (Editor 이용호)
사진  '커피미업' 김동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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