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드커피리서치World Coffee Research
월드커피리서치(이하 WCR)는 2012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커피의 미래The Future of Coffee’라는 강령 아래 ‘커피 유전학Coffee Genetics & Breeding’, ‘커피 품질Coffee Quality’, ‘커피 품종Coffee Variety’, ‘기후변화Climate Change’, ‘농부 지원사업Supporting farmer profitability’, ‘커피 질병Coffee Diseased & Pests’ 등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WCR에서 발표한 커피 품종자료가 <커피리브레>의 지원으로 한국어로 번역돼 커피의 품종과 관련된 보다 깊이 있고 객관적인 데이터가 마련됐다. 이는 티피카, 버번 같은 재래종뿐 아니라 고급 품종으로 인식되는 게이샤, 파카마라, 품종개발의 정점에 있는 파라이네마, 코스타리카 95 등 총 55개의 품종 정보를 총망라하고 있다. 커피나무의 물리적 특성(키, 새순의 색상, 콩의 크기 등)과 생산성, 잠재력, 질병 저항성 등의 정보를 한눈에 인지할 수 있도록 정리해두었다. 이 책자를 통해 품종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선우 바리스타는 “빠르게 변화하는 품종, 가공 관련 정보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는데, 한글로 번역돼 막힘없이 공부 할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앞으로 커핑을 하는 자리에 항상 이 책자를 가지고 다니며 잘 모르는 품종이 나올 때마다 공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WCR의 품종연구는 현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WCR이 실험재배를 통해 생산한 커피를 이용해 커피리브레의 주관으로 ‘같은 고도, 같은 환경에서 탄생한 품종별 향미 비교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가한 박수현 씨는 “WCR 덕분에 평소 궁금하던 품종별 향미 차이를 변수 없이 정확히 인지할 수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품종 관련 편견이 깨졌다. WCR의 연구는 소비국의 커피 학습에 그치지 않고 생산국에서도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재배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커피 생산 환경이 어려워지는 시점에서 WCR의 연구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또 다른 바리스타 역시 비슷한 소감을 이야기하며 WCR의 연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밖에 <커핑포스트> 이치훈 대표는 자료에 대해 “현재 알아야 하는 품종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해 커피인에게 꼭 필요한 품종지식을 담고 있다. 모든 커피가 특별하다고 이야기되는 요즘, 품종을 아는 건 매우 큰 강점이므로 커피인의 필독서이자,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이 자료와 ‘카페 임포츠Cafe Imports’의 품종나무 이상 두 가지 자료만 숙지한다면 대략적인 커피 품종의 분류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 2019 페루 CoE, 품종 논란
많은 국내 업체가 CoE, BOP 등의 커피 옥션에서 커피를 구매하고 있다. 그 중 2019년 가장 마지막으로 열린 페루 CoE에서 국내 업체가 낙찰 받은 커피와 관련해 몇 가지 이슈가 수면 위로 불거졌다. 국내 업체가 낙찰 받은 건 1~3위, 그리고 10위 커피다. 1~3위 커피가 모두 국내 업체를 통해 시장에 소개되는 드문 광경이 펼쳐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낙찰 받은 커피를 기다리던 1, 2위 커피 낙찰 업체가 CoE를 주최하는 ACE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다. ‘당초 옥션에 게재됐던 품종 관련 정보가 변경됐다’라는 제목이었다. 그 내용은 1위 커피의 품종이 ‘마르셀Marshel’에서 ‘코스타리카 95’로 변경됐고, 2위 커피는 ‘게이샤 잉카’ 품종에서 ‘SL-9’로 변경됐다는 것이었다. 메일을 발송한 ACE 담당자 에린 왕Erin Wang은 “농부가 게이샤 잉카로 CoE에 출품했기에 그렇게 표시했으나, 기존에 없었던 품종이었던지라 WCR에 샘플을 보내 품종 확인 과정을 거쳤다. 옥션 시작 전 결과를 받지 못해 완벽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유감이다. 유전자 검사결과 해당 커피는 게이샤가 아니라 SL-9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우리는 2019 페루 CoE 2위 랏의 품종을 변경하고자 한다. SL-9은 케냐 ‘스콧 랩 리서치 인스티튜트Scott Lab Research Institute’에서 1930년대에 개발한 품종”이라며 “실제로 농부들이 게이샤로 인지하고 WCR로 보내 유전자 검사를 한 샘플 중 약 38%만이 게이샤로 판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CoE에 게이샤 품종으로 출품된 커피 중 ‘진짜’ 게이샤는 약 38%에 지나지 않다니, 향후 수많은 게이샤 커피를 의심해보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메일을 받은 낙찰자 그룹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커피몽타주> 신재웅 대표는 “게이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품종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했다면 결과가 나온 뒤 옥션을 진행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실제로 2위 커피는 게이샤와 유사한 컵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었고, 최종 커핑 점수는 91.44로 훌륭한 커피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다만 그동안 없었던 ‘게이샤 잉카’ 품종이라는 점에서 정해둔 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했는데 이제 와서 품종 변경 통보를 받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같은 낙찰자 그룹의 멤버인 커핑포스트 이 대표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1위보다 높은 금액을 베팅한 것은 ‘잉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이샤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국내 시장에서 게이샤라는 품종이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이를 고려해 더 높은 금액을 내걸었는데 품종이 변경됐다니 어떻게 판매를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낙찰자 그룹 대표로 ACE에 메일을 보내 입장을 표명했다. 오랜 시간 CoE를 믿고 구매해왔는데 이번 건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CE 측 역시 이러한 일이 처음인 만큼 대처 방안을 고민하고 있을테니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후 ACE로부터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속이거나 착오가 있는 게 아니라 품종에 대해 정확히 안내하는 것이 농부와 소비자를 정직하게 연결하는 ACE의 가치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품종을 정정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WCR 측에 더 많은 2위 랏 샘플을 보낸 상황으로, 정확한 답변이 도착할 때까지는 품종을 다시 게이샤로 정정한다”는 통보와 함께 CoE 사이트에 게재된 2019 페루 CoE 2위 랏의 품종 정보는 다시 게이샤로 변경됐다. 게이샤 잉카에서 SL-9으로, 그리고 다시 게이샤로. 향후 WCR의 최종검사 결과와 함께 품종이 한 번 더 변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층커피랩> 공근우 대표는 “WCR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품종을 검증한다는 소식에 커피 품종도 이제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판단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운 빠진다. 이제는 농부들이 이야기하는 품종정보도 의심해야 하고, 소비국의 입장에서도 게이샤를 구매할 때 ‘WCR 품종인증서’를 첨부해서 거래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 같다. CoE의 수많은 커피를 모두 유전자 검사로 검증해야 한다는 자체가 정말 큰 작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생두 유통 업체 관계자는 “생두 조달 작업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CoE 상위 10위권에 드는 커피는 모두 유전자 검사로 품종을 검증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더 많은 서류가 필요하게 될 테니 앞으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ACE와 나눈 마지막 메일에서 에린은 “ACE는 비영리 단체이며 CoE에 참여한 모든 심사위원은 품종이 아닌 컵 자체의 품질에 집중해 점수를 부여한다. 우리는 늘 농부가 제공한 품종 정보를 게재해왔지만, 농부들이 자신이 재배한 커피의 품종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흔해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구매자와 농부 모두에게 발전적인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라며 “낙찰 업체 역시 품종보다는 컵 자체에 대한 품질에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부분은 ACE의 과실이라 생각하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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