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인상을 안겨준 쿱체비 조함과 파스코 조합
페루에서의 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비포장 절벽 도로를 네다섯 시간동안 달리는 것은 물론, 고도 3,300m가 넘어가는 도시에서는 고산병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산지 경험이 풍부한 송호석 교수님의 도움으로 꽤 값이 나가는 고산병 약을 미리 먹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머리가 지끈대고 하루종일 속이 울렁이는 낯선 느낌은 마치 심한 숙취를 겪는 것만 같았다. 결국 해발고도 4,300m의 안데스 산맥을 넘어 내려오는 중 고산병에 의해 쌍코피로 얼굴을 적셔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후닌 주 찬차마요Chanchamayo 지역의 쿠체비Coopchebi 조합.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곳은 1819년 영국에 의해 티피카, 네덜란드에 의해 로부스타가 전해지면서 커피농업을 전개해왔다. 근래에는 커피 체리 껍질을 말려 만드는 카스카라Cascara 티를 생산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관계자가 마침 카스카라에 카카오를 첨가한 잼과 빵을 함께 제공해줘 먹어볼 볼 기회가 있었다. 어릴적 시골에서 먹었던 보리수 열매로 만든 잼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하지만 자연건조를 하고 있는 탓에 가공 과정에서 해충이 발생할 우려가 생기는 등 위생관리가 까다로워 아직은 여러 나라로 수출하긴 어렵다고.
5월에서 8월 사이에 커피 수확을 진행하는 이곳은 현재 1만 2,000~1만5,000QQ (1QQ=46kg)을 생산하고 있고 내추럴&허니 프로세스는 사전 주문을 받아 판매한다. 수출에 관해 관계자는 “중국은 수출법이 까다로워 시도가 어렵고 한국은 검역이 까다로운 대신 세금이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2013년 중남미를 강타한 ‘로야 바이러스’는 이곳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준 듯 했다. 정부의 지원이 끊겨 그나마 바이러스에 강한 카티모르종을 많이 취급하고 있지만, 바이러스 재발의 우려로 아직 지원 계획이 뚜렷하지 않다고. 간단한 식사 후 파스코 주 옥사팜파Oxapampa 지역의 쿠나비르CUNAVIR 농장으로 이동했는데 이곳 역시 로야 바이러스로 인해 농장 전체 면적이 17ha에서 3ha까지 줄어들었고 올해는 재배된 양이 충분하지 못해 수출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농장주는 우리에게 “나는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도 가본 적이 없다. 여기서 파치먼트 1kg를 3불에 팔고 있는데, 아직 한 잔에 4불인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마셔 본 적도 없다. 사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있지만 다른 커피 선진국에서 프로세스를 배워 와 품질 향상에 힘쓸 계획”이라며 약간의 울먹이는 모습과 함께 말을 전했다. 시간이 남는다면 다 같이 바베큐 파티를 하면 좋겠다며 사람 좋게 웃는 그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정지윤
2018 마스터오브브루잉 챔피언
<콩볶는드래곤> 바리스타
고산병으로 쌍코피라니 상상이 안 되네요. 커피를 보러가는 길이 그렇게나 위험할 줄이야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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