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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향(加香)과 가향(佳香) 논란의 중심에 서다

전문가 칼럼

가향(加香)과 가향(佳香) 논란의 중심에 서다 가향 커피를 둘러싼 뜨거운 공방
2022년을 달군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가향’이지 않을까. 최초로 가향 논란이 일었던 커피는 소위 ‘시나몬 게이트’의 중심에 있던 코스타리카 엘 디아만테(El Diamante) 농장에서 생산한 것이었다. 저마다의 특색 있는 가공법으로 농장만의 특별한 향미를 발현시키는 시대를 맞이한 지금, 관련된 여러 논란에 대해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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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다

<아이덴티티커피랩> 윤원균 대표는 현재 판매 중인 가장 있기 있는 한 커피의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며 몇 달 전 유튜브 채널 ‘안스타’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차례 검사를 반복한 결과 프로필렌글리콜(Propylene Glycol, 이하 PG)이 자연발생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 이 수치는 인위적인 가향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논란의 커피는 <커피 리브레>에서 수입한 콜롬비아 엘 파라이소 리치(El Paraiso Lychee)로, 같은 카테고리의 커피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품목이었다.

유튜브로 방송이 송출되고 난 뒤 파장은 생각보다 더 컸다. 해당 커피를 대량으로 구매한 업체들의 항의, 검증되지 않은 자료가 여과 없이 공개돼 피해를 입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협박성 메일 등 다양한 후일담이 전해졌다. 대구의 모 업체는 가향 논란을 이유로 들며 해당 커피의 이벤트 판매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시일이 흘러 커피 리브레 서필훈 대표가 PG는 효모의 발효를 통해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일 뿐 별도의 첨가물을 넣지 않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농장을 직접 찾아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도 공유했다. “엘 파라이소 농장에서는 수차례의 발효를 거친 파치먼트를 식히고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엔프리아도르 드 글리콜’이란 장비를 통과한 물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글리콜(Glicol)’은 식품첨가물인 동시에 부동액으로 쓰이는 성분이다. 그래서 의심을 품고 이 기기를 통과한 물과 그렇지 않은 물을 비교 시음한 결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기기에서 누수된 글리콜이 커피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라는 의혹이 생겼고, 앞으로 검증을 통해 사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번 논란은 엘 파라이소 리치 같은 부류의 커피가 현재 커피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카테고리이기 때문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름에 들어간 과일 혹은 향신료의 뉘앙스가 너무나 선명하게 발현되는 이들 커피의 등장은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 여겨졌던 커피의 향미에 대중이 호기심을 갖게 한 큰 전환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로스터리 카페 대표는 “손님들이 엘 파라이소 리치 같은 커피를 한 번 마시고는 굉장히 신기해하더니 이내 단골이 됐다. 그 반응을 경험하고 나니 이젠 비슷한 부류의 커피들을 라인업으로 무조건 가지고 가게 됐다. 가향 논란과는 관계없이 고객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커피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들 커피의 등장과 함께 일반적인 워시드, 내추럴 커피의 영역이 지나치게 줄어들었다. 클래식한 커피의 영역이 보호받는다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커피가 향이 입혀진 듯한 뉘앙스를 가진 것들로 도배될 생각을 하니 회의감이 든다. 농부들의 노력과 테루아가 빚어낸 깨끗하고 깔끔한 느낌의 전통적인 커피가 사라져가는 듯해 아쉽다. 각기 다른 영역으로 구분되기보다는 가향류가 기존 커피의 영역을 침범할 것 같아서 심각하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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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국의 입장

필자는 얼마 전 페루와 볼리비아를 방문했을 당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부류의 커피를 준비해 생산자들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페루 북부 산 이그나시오(San Ignacio)에 위치한 협동조합인 ‘카실(CASIL)’의 품질 평가원 엘톤(Elton)은 “이런 커피들을 처음 접해 본다. 신기하고 재밌지만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첨가된 듯한 향미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기존 커피의 뉘앙스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라는 평을 내렸다. 이에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 등의 생산국에서 최근 유행하는 커피라고 소개하며, 페루에서도 이렇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이런 커피들이 만들어진다면 기존 커피시장에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정확히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농부들은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 품질이 좋아진다고 생각해왔다. 만약 커피를 그저 많이 생산한 뒤 향을 첨가해서 이런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면 허무할 것이다”였다. 또한 “커피엔 생산되는 지역의 테루아와 생산자의 철학이 담긴다고 늘 믿었기에 이 맛은 꽤 충격적이다”라고 덧붙였다.

푸노 주에 위치한 알토 발레 데 라 플로라(Alto Valle de la Flora) 농장의 농장주 에드가(Edgar)는 “나도 버번 품종을 재배하고 있지만 버번에서 이런 뉘앙스가 발현되는 건 처음 본다. 가공법에 특별한 비책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버번 본연의 특징이 완전히 사라지니 카티모르 같은 생산량이 강점인 품종에 대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급 품종을 재배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라면서 “이런 종류의 커피를 개발하고 완성한 이도 나름의 노력과 연구를 통해 커피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의도였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정확한 방법을 안다면 나도 시도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가공을 거친 커피가 오랜 시간 판매될 것이라고 보는지를 묻는다면 다소 부정적이다. 재밌는 커피인 것은 사실이지만 완성도가 높거나 음용성이 좋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라는 의견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생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런 커피를 만드는 일이 더욱 수월하다. 좋은 테루아가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지만 이젠 이전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기후가 너무 많이 변했고 커피의 품질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가공식품과 마찬가지로 커피도 가공법을 명확히 설계하는 것이 위험요소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통제가 가능하고 균일한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렇게 예측 가능한 커피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 가향커피가 국내 커피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다양한 가공방식의 용어 재정립에 관한 필자의 의견은 월간커피 2022년 12월호 ‘스페셜뷰 1’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석예술대학교' 송호석 교수
사진  '백석예술대학교' 송호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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