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이름이 길면 그럴싸해 보인다. 비싼 와인일수록 병에 붙어있는 라벨에 나라와 산지 그리고 어느 마을의 밭인지 상세히 적혀있다. 포도의 품종과 와인의 종류는 물론 농원의 이름에, 때로는 만든 사람의 이름까지 붙곤 한다. 커피도 다르지 않다. 어느 나라의 어느 지역인지 그리고 누가 어떻게 가공해 만들었는지 세부적인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을수록 가격표에 적힌 숫자가 불어난다. 와인과 커피의 연장선상인 서구의 차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런던 피카딜리의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MASON’ 백화점 1층에는 세계 각국의 온갖 차가 호사스럽게 놓인 근사한 진열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차들은 고급스러운 원목 소재의 아름다운 티 캐디Tea Caddy1)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데, 여기엔 높은 확률로 ‘싱글 에스테이트 티’라고 적혀있을 것이다.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의 차 산업은 대중에게 모나지 않고 균일한 품질의 차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전해왔다.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차 만드는 기계를 제작하고 차의 품질을 한꺼번에 평가할 수 있는 테이스팅 기준을 만들었으며, 병충해와 추위에 강하고 생산량이 빼어난 차나무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에 있는 세계 최초의 차 연구소 토클라이 연구소(Tocklai Tea Research Institute)를 세웠다. 영국인들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중국 사람이 발로 비벼 만든 홍차를 고가에 사 마셔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차라는 음료를 마실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일군 티 플랜테이션들은 때로 티 가든Tea Garden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에이커나 헥타르 단위로 헤아려야 하는 거대한 규모이므로 보통 티 에스테이트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다원(茶園)이라고 하고, 한 농원에서 생산된 차를 단일 다원 차, 싱글 에스테이트 티라고 부른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차는 대형 식품 회사의 공장에서 블렌딩해 티백 형태로 출하되는 공산품이다. 각국의 마스터 티 블렌더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차들 사이를 헤매며 지난해와 똑같은 차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이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단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차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가 차 생산자들의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고 차를 대체할 다양한 마실 거리가 늘어나며 티 플랜테이션에서 만들어지는 차의 소비량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90년대 초에는 영국 정부에서 나서서 홍차를 마시자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차 시장 일부를 마침내 외부로 개방했고, 전 세계의 차 애호가들은 지금까지 접하기 어려웠던 녹차나 우롱차, 보이차 등 새로운 차에 열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먼저 위기에 직면한 곳은 인도 다르질링이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티 플랜터들이 일궈낸 다르질링의 차밭들은 다른 티 플랜테이션 농원들과는 달랐다. 인도를 필두로 스리랑카와 케냐 등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지역에 차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그들이 추앙했던 중국 복건성의 차나무로 재배에 성공한 곳은 오직 히말라야산맥 산자락에 자리 잡은 다르질링뿐이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이라는 차에 특화된 스파이를 보내 차나무 씨와 차나무를 빼내고 차 제조 기술까지 훔쳤지만 결국 다르질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중국 차나무종 재
배에 실패했다. 사필귀정이랄지, 자업자득이랄지 한때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우리들의 복잡한 시선과는 별개로 영국인들에게 다르질링은 무척 특별할 수밖에 없었기에 현재까지도 다르질링의 찻잎은 다른 차 산지처럼 자르거나 부수지 않고 정통 제법(오서독스 방식Orthodox Method)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다소 고가에 거래되곤 했다. 그들에게 다르질링의 차밭은 시작부터 스페셜티 티Specialty Tea였던 셈이다.
그러나 다르질링 티의 주요 수출국이었던 소련이 해체되고 경제난을 겪게 되면서 다르질링의 차 생산자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다르질링 티에 가장 큰 관심
장인의 손길로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하여 ‘아티산 티’라고 불리는 새로운 차를 향한 관심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아티산 티가 전혀 새롭지 않다. ‘오설록’과 같은 대기업을 제외한다면 하동이나 보성에서 생산되는 우리 녹차는 대체로 작은 농가에서 장인의 손으로 소량씩 만들어진다. 또한 블렌딩 작업을 거의 거치치 않기에 새로운 퀄리티 시즌이 올 때마다 다른 맛의 새로운 차를 마신다는 것 또한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최근의 아티산 티 열풍을 우리의 관점에서 ‘오래된 미래’라고 부른다. 우리에게는 이미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전통문화지만 거시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앞으로의 차 산업을 이끌어갈 새로운 미래이기에. 과거에는 생산 품질이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한국 차를 수매하기 꺼렸던 서구의 차 회사조차 최근에는 소량 한정 생산이라는 마케팅 타이틀을 걸고 하동이나 보성, 제주의 녹차를 자국의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https://experience.arcgis.com/experience/c756a4761cba42f4a1b9d03fd1762202
2024-10-03
좋아요(0) 답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