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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차

커피스터디

흑차
이제 육대차류 중 마지막 차만 남았다. 찻잎에도 수색에도 검은빛이 돌아 흑차(黑茶)라는 이름이 붙은 이 차는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조금 낯설다. 직접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 바깥으로 내다 팔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홍차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차의 바탕 또한 녹차이기에 어떤 의미에선 황차와 닮기도 했다. 그러나 만드는 방식만을 본다면 앞서 살펴본 다섯 차들과는 명백히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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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과 후발효
 
녹차에서 백차와 청차, 홍차, 마지막으로 황차까지 이어지는 다섯 가지의 차를 만드는 제다 기술의 핵심은 산화다. 찻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면 이파리 속의 효소가 폴리페놀을 산화시켜 찻잎을 노랗게, 붉게 그리고 갈색으로 바뀌게 한다. 이를 어느 정도로 조절하느냐에 따라 다른 차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흑차의 검은 빛깔은 다른 차들처럼 산화 효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흑차는 육대차류 중 유일하게 미생물의 발효가 필요한 차다. 찻잎을 딴 후 솥에 덖어 산화 효소의 활성을 멈추게 하는 살청까지는 녹차와 같지만, 흑차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약퇴(渥堆)라고 불리는 후발효 과정이다. 고온의 살청을 거치는 동안 사멸했던 미생물들은 찻잎의 모양을 잡는 유념 과정에서 다시 생겨난다. 그리고 찻잎을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로 쌓아 놔두면 내부 온도가 올라가고, 따뜻하고 촉촉한 찻더미 안쪽은 우리 몸에 이로운 미생물들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찻잎 속의 성분들은 이들에 의해 분해돼 다양한 화학 변화를 일으키는데, 된장이나 치즈가 그렇듯 본래의 재료가 지닌 풍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과 향을 품는다. 발효된 찻잎에 들어있는 여러 성분은 본래보다 잘게 쪼개져 있는 상태여서 소화 기관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으므로 노인이나 아이들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점 또한 다른 발효 식품과 동일하다. 찻잎의 쓰고 떫은 성분이 거의 분해돼서 달고 보드라운 맛을 지니지만 비에 젖은 흙이나 낙엽에서 날 법한 곰삭은 내음이 감돌아 다소 호불호가 갈린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보이숙차도 흑차의 한 종류라 볼 수 있다.


차와 말을 바꾸다
 

어째서 찻잎을 발효시키게 됐는지 알려면 흑차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흑차가 차의 종류 중 하나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 것은 명나라 시기의 일이다. 하지만 미생물을 이용한 후발효차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짐작된다. 북송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사천성에서 토번으로 불린 티베트와 위구르 등 국경 북서쪽의 유목민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녹차를 원료로 오차(烏茶)라는 검은빛 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차 문화를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송은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여진족의 금나라와 거란족의 요나라 등 외부 세력의 침략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농업 국가였던 송은 전쟁에 필요한 말을 기르기 위한 목초지가 늘 부족했다. 그렇기에 인근 유목 민족들에게 찻잎을 제공하는 대신 빼어난 군마를 받아 오는 차마(茶馬)무역에 집중해야 했다. 차와 말을 교환하는 차마호시(茶馬互市) 자체는 당나라 때 이미 시작됐다. 상인들은 차를 바리바리 실어 중국 사천성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역로 중 하나인 차마고도에 올랐다. 고기와 유제품이 주식인 유목민들에게 차는 영양 불균형과 소화불량을 해결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이렇게 맞물린 서로의 이해관계는 몽골족의 나라였던 원대에 잠시 중단됐다가 명을 지나 청대 초기까지 이어졌다.

운반의 편의를 위해 단단한 덩어리 형태로 뭉친 찻잎들은 높고 험준한 차마고도를 넘으며 열과 습기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런 와중에 찻잎들은 해차의 싱그러운 초록빛을 잃고 점차 누런 갈색으로, 때로는 검게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당시 만들어지던 차는 증기를 쐬어 살청한 녹차로, 이러한 찻잎의 변화는 산화보다 미생물이 일으킨 발효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풋풋한 녹차보다는 이렇게 검게 변한 차 쪽이 고기 위주의 기름진 음식에는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유목민들은 중국에서 보내온 녹차를 일부러 숙성시켜 때로는 우유나 버터를 곁들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밀크티를 마신 사람도 바로 이들이었을 것이다. 중원의 한족들과는 달리 그들에게 차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식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필수품이었기에 다 자라 쇤 잎이나 가지가 섞여 들어가 저렴한 차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찻잎을 발효시키는 데에는 굳이 어리고 연한 잎을 쓸 필요가 없었기에 흑차는 중국의 변방에서 더욱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후에 동남아 일대로 화교들이 이주하며 이 지역에서도 흑차를 널리 마시게 됐다. 19세기에 이르면 차마무역의 중심이었던 사천성과 운남성뿐 아니라 중국 남부의 호남성과 광서성 그리고 호북성과 안휘성까지 흑차를 만들게 됐다.



찻잎 위에 핀 금빛 꽃
 

흑차가 시작된 곳은 중국의 사천성이지만 흑차 제다 기술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립하고 발전시킨 곳은 호남성의 안화 지역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차로는 대나무 광주리에 눌러 담아 발효시킨 복전(茯磚)과 원기둥 형태로 긴압(단단하게 압축)해 대나무 끈으로 묶어 고정한 천량차(千兩茶)가 유명하다. 흑차를 만들 땐 충분히 자란 잎이 필요하다. 고로 입하 이후에 찻잎을 따며 약퇴 후에는 소나무 장작을 때어 부뚜막에서 차를 말린다. 이 과정에서 차에 은은한 소나무 내음이 스민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만들어진 차는 다시 부숴 재가공 후 긴압한다. 다 만든 차의 겉면은 짙고 윤기 나는 검은빛이지만 찻잎 사이사이 노란 송화 가루라도 뿌려 놓은 듯 금빛 알갱이가 보인다. 이를 마치 금빛 꽃이 피어난 것 같다고 하여 금화(金花)라고 부른다. 사실 이것은 ‘관돌산낭균’이라는 누룩곰팡이의 일종으로, 금화가 핀 차는 맛이 순하고 달콤하며 수색은 일반적인 보이숙차에 비해 밝은 붉은빛을 띤다.

보이숙차가 그렇듯 흑차 또한 해차를 바로 마셔도 상관없지만 세월이 더해갈수록 향과 맛이 차차 온화해진다. 처음에는 덜 마른 빨래같이 쾌쾌하게 느껴지던 특유의 발효취도 차츰 오래된 서가에 내려앉은 시간의 흔적처럼 느슨해지고, 산수유와 같은 햇살에 잘 마른 과실의 달큼한 내음이 더해진다. 차는 맑아지되 단맛은 점차 짙어지는 것. 오래 묵힌 흑차는 보이차 못지않게 고가에 거래되며, 이러한 연유로 흑차는 보이차를 이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중국에서 각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발효를 거치며 생기는 여러 성분이 당뇨와 고지혈증 등의 성인병을 예방 및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각계의 관심이 흑차에 집중되고 생산량 및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흑차는 미생물의 후발효를 이용한 차다 보니 아무래도 아플라톡신 등 곰팡이로 인한 독성이 염려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1970년대 흑차의 제다 방식을 현대식으로 개량하는 데 앞장선 호남성의 ‘백사계차창’에서 만든 흑차를 권한다. 좀 더 무난하게 접근하고 싶다면 보이숙차 제조의 기원이 된 육보차(六堡茶)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광서성을 대표하는 ‘오주차창’의 육보차도 백사계차창과 마찬가지로 국내에 정식 통관을 거쳐 소개되고 있으니 한번 살펴보면 어떨지. 모든 차가 그렇지만 비싸면 무조건 좋다는 선입견은 버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위생적인 시스템 아래 안정적으로 생산되는 차들을 하나씩 맛볼 것을 권한다. 누군가의 의견에 쉬이 귀를 기울이기보다 작게나마 경험을 차츰 늘리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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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티에리스> 정다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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