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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디드 티

커피스터디

블렌디드 티
지난 회차에서 다룬 흑차를 끝으로 차나무 한 그루에서 나올 수 있는 여섯 가지 차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차 전문점의 수 페이지에 달하는 카탈로그나 메뉴판 앞에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을 것이다. 다르질링이나 아리산, 우지처럼 지역 이름이 붙어있는 쪽은 차라리 낫다. ‘루브르의 아침’은 대체 무슨 차이며, 마‘ 르코 폴로’는 저명한 탐험가의 이름 아니던가? 이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또 다른 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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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차
 
차는 차나무의 잎을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원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막상 집 근처의 카페나 대형 마트, 백화점에서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차의 종류는 이와 조금 다르다. 월간<Coffee> 독자들에게 친숙한 커피의 종류를 한번 떠올려보자. 커피가 만들어진 곳의 이름이 붙는 싱글 오리진 커피, 이들을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커피, 최근엔 다소 드물지만 헤이즐넛 커피처럼 향을 첨가해 만드는 플레이버드 커피가 있다. 차의 종류도 이와 비슷하게 나뉜다. 일상에서 차를 고를 때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은 차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의 여부다. 이는 차와 차가 아닌 허브류, 흔히 말하는 허벌 티Herbal Tea를 분류하는 기준이다. 찻잎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부담스럽다면 이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차치하고 나면 차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단일 산지, 즉 ‘하나의 차밭에서 만들어진 차인가’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배운 육대차류에서 예시로 들었던 대부분의 차는 여기 속한다. 녹차의 서호용정이나 홍차의 다르질링 퍼스트플러시처럼 보통 차 이름에는 산지의 명칭이 함께 적히며, 이를 ‘싱글 오리진 티Single Origin Tea’라고 한다. 여기서 좀 더 고가의 차 제품들을 살펴보면 그냥 다르질링이 아니라 캐슬턴Castleton이나 정파나Jungpana 등 다원의 이름이 함께 붙는다. 이러한 차들은 싱글 에스테이트 티Single Estate Tea라고 따로 구분하며, 보통은 단일 배치Batch 단위로 숫자를 매겨 티 옥션 등을통해 판매한다. 둘째는 각 산지의 차들을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티Blended Tea’다(블렌딩 티Blending Tea는 잘못된 영문 표기다). 어느티 브랜드든 흔히 만날 수 있는 기본 제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셋째는 차에 향료를 첨가해 만드는 ‘플레이버드 티Flavoured Tea’다. 홍찻잎에 시트러스의 일종인 베르가모트의 향기를 더하는 얼그레이가 대표적인데, 일반적으로 초콜릿이나 과자에 홍차를 곁들일 때 가장 무난하게 사용하는 대중적인 차다. 독특한 향기가 든 것을 원한다면 플레이버드 티를, 차 고유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싱글 오리진 티나 블렌디드 티를 고르면 되겠다. 또한 블렌디드 티나 플레이버드 티는 브랜드마다 고유의 레시피로 만드는만큼 독특한 이름이 붙곤 한다. 고로 차 이름이 생소하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전혀 없다. 이름에 지역이나 국가가 붙었다면 싱글 오리진 티, 아니라면 나머지 두 가지 중 하나다. 착향 여부는 찻잎의 향을 맡으면 금세 알 수 있다.


어째서 섞을까?
 

커피나 와인이 그렇듯, 아니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렇듯 섞인 것보다는 순정한 것의 가치가 훨씬 높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블렌디드 티나 플레이버드 티보다는 싱글 오리진 티, 그것보다도 더 좁은 개념의 싱글 에스테이트 티의 가격이 배 이상 높다. 섞지 않고 만든 그대로 판매한다면 더욱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차는 블렌디드 티다. 심지어 싱글 오리진 티인 다르질링만 하더라도 여러 티 팩토리에서 서로 다른 날, 다른 계절에 만든 찻잎을 두루 섞어서 유통하곤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차를 만들어진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섞어서 판매하는 것일까. 기존의 것을 토대로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 자체로도 몹시 매력적일 수 있지만, 티 블렌딩Tea Blending의 시작을 되짚어보면 이러한 창조적인 이유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성이다. 하나의 차나무에서 같은 날 딴 찻잎을 모아 단번에 만든 차가 모양과 맛, 향기 모든 면에서 빼어나다면 몹시 비쌀 것이다. 그보다 향은 조금 떨어지지만 맛이 훌륭하고, 모양새는 좋지만 맛이 다소 빈약한 차, 그리고 다른 부분은 아쉽지만 향이 매우 빼어난 차를 조금씩 섞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시킨다면, 그 자체로 완벽한 차에 비해 크게 모자라지 않으면서도 가격 면에서 경쟁력 높은 차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안정성이다. 서구의 차 산업을 주도해온 티 플랜테이션 농업은 특별히 빼어난 하나의 차를 만들기보다 청결하고 안전한 시스템 아래서 안정적인 품질의 차를 일정하게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성장했다. 예컨대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 Mason’의 올해 다르질링 티의 맛이 작년과 달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차는 엄연한 농산물이고 언제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차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매일 다른 곳에서 세상에 없던 차가 탄생한다.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 사이를 유영하며 차를 고르고 매번 일정한 향기와 맛을 지닌 차를 만드는 마법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티 블렌더Tea Blender’다. 맛과 향기를 섬세하게 기억하고 꼼꼼히 복원해야 하는 이 일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작업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나만의 블렌디드 티
 

티 블렌더의 일과는 별개로, 내 취향에 맞는 나만의 블렌디드 티를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만들기 전 짚어야 할 것이 있는데, 티 블렌딩을 할 때 가장 자주 보이는 실수는 섣불리 건엽부터 섞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차가 우연히 근사한 차로 새롭게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찻 잎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접근해보자.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어떤 차를 만들지 큰 틀의 주제와 이미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다음 이와 어울릴 법한 차 3~4가지를 고른다. 티 블렌딩이 처음이라면 가급적 세 가지 이내로 섞어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잠을 깨우고 활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진한 홍차를 마시고 싶다면 홍차 중에서도 산화도가 높고 짧은 시간 안에 짙게 우러나는 풀바디Full-body의 찻잎을 재료로 골라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재료로 선택한 서너 가지의 찻잎을 양과 시간을 맞춰 동일한 조건으로 우려낸다. 되도록 티포트나 개완 여러 개를 이용해 동시에 우리는 것이 좋다. 각각의 차가 다 우러나면 하나씩 천천히 맛을 본 다음, 한 스푼씩 1:1:1의 비율로 섞어 다시 테이스팅한다. 그러고 나면 어떤 차가 더 들어가야 할지 좀 더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그 뒤로는 우린 차를 섞고 맛보며 1:1:2 혹은 1:1:3 등 최상의 비율을 찾아본다. 배합 비율을 얼추 찾은 다음엔 건엽을 이에 따라 섞고 우려서 맛을 본 뒤 세밀하게 조정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만든 블렌디드 티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 완성이다.


Writer / Photo  <티에리스> 정다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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