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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커피스터디

보이차
지난 반년 가까이 여섯 가지 차의 종류, 육대차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녹차, 홍차, 청차, 백차, 황차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차가 남아있지만 이 여섯 분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차가 있다. 바로 보이차다. 어쩌면 녹차로 시작해 흑차로 매듭지어지는 이 연재의 진정한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차를 둘러싼 숱한 오해와 약간의 거짓 사이에서 이제 보이차의 맨얼굴을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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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가 뭐길래
 

해외에서 차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보이차는 어떠냐는 말이었다. 소장하고 있던 보이차를 가지고 와서 진품인지 아닌지 살펴봐달라는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솔직히 털어놓자면 차를 즐긴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어가지만 보이차를 제대로 공부하며 경험을 깊게 쌓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들리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데 전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대체 누구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셔볼까 싶어 차 가게에 갔다가 가격표에 붙은 0의 개수를 쳐다보기조차 두려운 보이차와 그보다 더 비싼 은주전자를 강권 받고 치를 떨며 나온 기억이 적지 않다. 지금 집에 있는 차는 모두 버리라는 조언 아닌 조언은 덤. 가볍게 차를 즐기러 왔을 뿐인데 어쩐지 돈 내고 야단맞는 듯한 억울한 기분까지 든다. 이런 식으로 보이차와 거리를 두게 된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차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셀 수 없이 다양한 차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왔지만, 보이차만큼 논란의 중심에 있던 것이 또 있었을까.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제품이 가짜니 속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위장을 버릴 수 있으니 절대 햇보이차를 마시지 말라고 한다. 보이차는 오래 묵혀야만 제 가치를 발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누군가 써둔 보이차의 효능만 보면 암도 당뇨도 훌훌 떨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그런데 그 효과를 보려면 얼마나 마셔야 할지 미심쩍다. 이처럼 보이차에 관한 담론은 빨갛게 달군 숯 위에서 언제나 뜨겁게 끓어오를 준비가 되어있다.


보이차와 모카커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본래 모카커피는 초콜릿시럽을 넣은 에스프레소 음료의 이름이 아니라, 일찍이 커피를 재배한 나라 중 하나인 예멘에 있는 항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 알 모카Al Mukha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지만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가 모여 유럽으로 수출됐기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보이차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이차는 중국 운남성 남서쪽에 위치한 보이(普洱)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당시에는 사모(思茅)시라고 불렸던 이 지역을 포함한 행정 구역의 이름이 보이현이었으며, 차 무역이 한창이던 청나라 시기에 보이현은 운남성 전체를 총괄하는 행정중심지였다. 운남성 전역에서 재배되는 모든 차는 보이에 모여서 말끔히 포장됐고 여기에 찍힌 보이라는 글자가 곧 차의 이름이 됐다. 현재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지리적 표시제에 따르면 보이차는 운남성 내에서만 재배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운남성이 차나무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보이차의 역사 또한 차의 그것만큼 반만년을 거슬러 올라갈 것 같지만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보이차가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흔히 보이차라고 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역로 중 하나인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떠올리기 쉽지만 운남 지역이 중국으로 편입된 것은 원나라 때였으므로 적어도 그전까지는 티베트의 말과 바꿨다는 중국의 차에 보이차는 해당하지 않았다. 물론 차나무가 자라는 지역인 만큼 사천성에서 차 문화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차를 마셔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보이차를 만든 것은 운남성의 오랜 주인이었던 소수 민족들이 아니라 청나라 시기에 새로이 들어온 한족이었다. 보이차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 이름을 알리게 됐다.


보이차의 두 얼굴
 

많은 사람이 보이차가 어렵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보이차라고 부르는 차가 크게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생차(生茶)라고 불리는 거의 녹차에 가까운 맑은 차이며 다른 하나는 홍차보다 더욱 짙은 초콜릿 빛 수색을 띠는 숙차(熟茶)다. 이 둘은 잎의 모양새부터 수색과 맛까지 전혀 다르기에 어느 쪽을 먼저 만나느냐에 따라 보이차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흔히 보이차라고 하면 이 둘의 개념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입문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헷갈릴 수밖에 없다.

생차와 숙차가 아예 다른 차인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건조를 마치는 시점까지는 생차도 숙차도 같은 차다. 이를 쇄청모차(曬靑毛茶)라고 한다. 모차라는 것은 어떤 차를 만들기 위한 밑 작업, 즉 초제(初製)*가 끝난 차를 의미한다. 쇄청은 햇볕에 말린다는 뜻으로 쇄청모차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1차 가공을 마친 일광 건조한 녹차다. 일반적으로 녹차를 만들 때는 열을 충분히 가해 산화 효소가 활성화하는 걸 완전히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생차든 숙차든 보이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공 후 숙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이 포장지에 담아 차를 유통할 수 없었으므로 찻잎에 증기를 쐰 다음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 부피를 최대한 줄이고 운반에 편리하게끔 모양을 잡아야 했다. 네모난 벽돌처럼 생긴 것부터 손잡이가 달린 버섯 모양까지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보이차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납작한 원반 모양이다. 보이생차는 쇄청모차를 성형하는 것에서 제다 과정이 끝난다. 완성된 보이생차는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숙성하며 그 가치를 더한다.

1970년대 이전 운남 지역에서 만들어진 모든 보이차는 생차였으며 차를 숙성시키는 건 상인들이 할 일이었다. 창고에 보관하며 10년 이상 숙성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이들은 찻잎에 물을 뿌려 발효시킨 다음 오래된 보이차로 속여 팔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품질이 좀 더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숙성 보이차를 원했고 이에 1973년 운남성다엽공사에서는 광동성과 홍콩의 사례를 참조해 쇄청모차의 푸른 찻잎을 짧은 시간 안에 검게 발효시키는 방법을 찾게 됐다. 이것이 바로 보이숙차다. 홍차의 찻잎이 검은 것은 효소에 의한 산화 때문이지만 보이숙차를 만들기 위해선미생물의 활약이 필요하다. 우선 쇄청모차를 각각 1m 가까운 높이로 수북이 쌓은 다음 물을 뿌리고 일정 시간마다 뒤섞어준다. 약퇴(渥堆)라고 불리는 후발효 과정이다. 이렇게 적당한 온습도를 유지하면 그 안에서 검은누룩곰팡이 등 유익한 성분을 만드는 균들이 자라며 차를 진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 살청, 유념, 건조를 거치는 1차 가공.


어떻게 마셔야 할까
 

생차와 숙차부터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납작하게 눌린 덩어리든 낱잎이 살아있는 형태든 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갓 만들어진 햇보이생차는 모양새가 녹차와 거의 비슷하다. 특히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은 맑지만 진득하고 향기롭다. 평소 산화도가 낮은 차들이 지닌 아로마를 즐긴다면 보이생차가 마음에 들 것이다. 한편 짙은 고동빛을 띠는 보이숙차에는 단숨에 응축된 농밀한 시간의 맛이 있다. 쓰지 않고 부드러운 맛 위로 다소 낯설지만 어쩐지 편안하고 익숙한 달큼한 내음이 얹혀있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취향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막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하는 이를 위해 둘 중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보이숙차를 먼저 권하고 싶다. 다소 이질적인 향기를 풍기지만 쓰거나 떫지 않으며 짙은 풍미를 지닌 보이숙차는 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무척 달가울 테다. 어디서 사야 할지 고민된다면 먼저 ‘대익보이차’ 같은 큰 회사의 제품을 고려해보는 게 좋겠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생산되므로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차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누가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보이차의 맨얼굴을 찬찬히 살피고자 노력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몰랐던 보이차의 매력에 이내 푹 빠지게 될 것이다.


Writer / Photo <티에리스> 정다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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