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커피의 역사와 기원 - 모카 마타리는 반 고흐 커피???
everycoffee|작성일 : 19-03-26|조회수 8,312
지난번 모카 커피에 관해 글을 쓴 이후, 이번엔 번외로 '모카' 하면 가장 생각나는 '반고흐'와의 연관성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국내 커피 업계에서는 반 고흐가 모카 마타리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이젠 하나의 사실 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예멘 모카 마타리를 '반 고흐의 커피'란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반고흐 커피' '반고흐 카페'를 컨셉으로 한 카페들도 많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반고흐 작품 중 카페 테라스 그림이 워낙 유명한 면도 있는것 같습니다
저 또한 커피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반 고흐의 아를로의 프룸 광장에서의 카페 테라스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예멘 모카 마타리가 부흥하고 쇠퇴했던 1600년대와 해당 그림이 그려진 1883년은 시기적으로 맞지가 않았습니다.
(왜 이 부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때문에 17세기부터 반고흐가 아를로의 포룸 광장 카페테라스에가 그려진 19세기 후반까지의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의 커피 음용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또한 반 고흐가 남긴 편지 등에서의 기록등을 살펴 보았는데요.
우선 19세기 후반의 카페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신분의 지위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정치, 사회의 사교장인 만큼 소셜클럽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반고흐에겐 영업장소 이상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반고흐가 예멘 모카 마타리를 즐겼다는 설화를 검색해보니 국내의 일부 서적이나 블로그 등에서 2010년부터 등장한 개념으로만 보여집니다. 그 어느 반고흐의 공식 사이트나 박물관에서도 이를 증명할 만한 증거자료는 없다고 합니다.
또한 반고흐뮤지엄(해외 공식)에 문의하니, 반 고흐가 예멘 모카 마타리를 즐겼다는 것은 루머임을 답변해 주었습니다.
반고흐 뮤지엄에 기록된 반고흐의 편지 기록물들을 찾아보니, 예멘 모카에 관한 것은 없을 뿐더러,
다만 카페테라스 그림이 그려진 1883년 당시 남긴 3-4통의 편지에서 '지난 며칠 간은 외상으로 커피와 빵, 그리고 술로만 끼니를 챙겼다' 라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커피의 역사와 관련한 기록을 찾아보아도, 이러한 설이 루머라는 것은 3가지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1. 19세기 후반 당시 예멘 모카마타리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그러나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커피를 예멘 모카로 부르기도 하였다)
2. 19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의 커피 음용 문화를 볼 때 대표적인 커피는 하이로스팅된 중앙아메리카산이었다. 하이로스팅이 보편화된 파리에서 굳이 예멘 모카마타리를 즐길 필요가 없다.
3. 반고흐는 커피보다 술을 더 즐겼다
우선 카페테라스 그림에 나온 해당 카페는 숙박업소, 레스토랑, 바 등 다양한 장소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반고흐는 커피보다도 술과 담배를 더욱 즐겼다는 기록 또한 있습니다. 19세기 파리의 커피 음용법은 보다 진보적이었습니다.
로스팅은 보편화 되었으며, 대도심에서는 리큐어를 첨가한 커피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커피든 우유든 알콜을 첨가했기 때문에, 커피하우스를 와인하우스로 불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파리 대로에는 수 백개의 카페가 있었으며, 아침에는 손님에게 신문을 가져다 주고 빵과 버터를 곁들인 카페 콩플레(cafe complet)를 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후에는 블랙커피를 팔았으며, 간혹 커피와 브랜디 또는 코냑을 섞은 음료를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반 고흐의 편지가 남긴 기록을 볼 때, 반 고흐는 빵과 커피를 즐겼으며, 간혹 술과 함께 커피를 섞은 음료를 즐기기도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해당 시기에 예멘의 모카 마타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만모카마타리가 아라비아 반도의 커피 시장을 독점하며 부흥하던 시기는 17세기(1600년대)중반까지 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예멘 모카는 18세기 이후 영국의 무역항 점령과 내전으로 인해 더 이상 커피를 재배하지 않았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다만 이후 오랜 기간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생산된 커피 전체를 두고 산지의 구분 없이'예멘 모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자바섬에서 커피를 재배하며 아라비아 커피 시장의 패권을 장악했음은 물론, 19세기에는 이미 중앙아프리카는 물론 북미와 중남미에서도 커피 재배가 본격화 되며 커피거래소가 등장할 만큼 커피 시장이 활성화 되던 시기 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프랑스는 미국 다음으로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였으며, 주로 동인도와 모카, 아이티, 중앙아메리카, 콜롬비아, 브라질 등 다양한 국가에서 커피를 수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당시엔 이미 로스팅 기법이 많이 발달되어, 식료품점이나 카페 등에서 원두를 로스팅하기도 하였으며, 하이로스팅이 보편화 되어 생두의 잡미와 풍미를 없애기 위해 하이로스팅을 했으며 따라서 중앙아메리카산 커피가 가장 잘 팔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루머가 왜 생성된 것인지는 알지 못하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대략 2010년부터 블로그 등에서 나온 기록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반고흐 커피', 또는 '세계 3대 커피'라고 부르던 것들이
알고보면 마케팅의 일환이 사실처럼 굳어진거라는걸 다들 알고 있었을까요?^^;;
이제는 반고흐 커피를, 술을 타 먹는 아이리쉬 커피를 뜻하는 말로 바꿔야 할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