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이 강조되고 주목받는 현재, 공정무역을 향 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공정무역이란 경제선진국 과 개발도상국 간의 불공정한 무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파괴, 노동력 착취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세계적인 시민운동이다. 이 개념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40년. 과거 식민지 착취와 지배에 대한 반성과 개 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한 이들의 움직임으로 시 작됐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개념이 확산되고 발전해 왔고 1980년대에는 최초의 공정무역 인증라벨이 생겼다. 네덜란드의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 재단'이 커피와 바나나, 꽃 등의 농산물에 공정무역을 인증하는 막스 하벨라르 라벨을 부착한 것이 시초다. 소비자가 일반상품과 공정무역 상품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인증라벨은 착한 소비를 장려하고 공정무역을 확 산하는 데 일조했다.
'국제공정무역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131개국에서 공정무역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제품 수는 3만 7,000개 이상으로 차츰 늘어 가고 있으며 공정무역 인증 생산조합은 총 71개국에 1,880개가 있다.
공정무역 시스템의 허점
커피에 공정무역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80년대 말, 전 세계적으로 커피가격이 급락해 어려움을 겪는 멕시코 농부들을 돕고자 한 것이 그 시작으로 전해진다. 정당한 가격 지불과 생산자의 역량 강화 지원, 친환경적 농업 지향, 투명성 등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공정무역은 커피농부들에게 실제로 보탬이 되고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공정무역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원이 절실한 소작농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공정무역 커피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에티오피아나 케냐, 탄자니아 등의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가 아니라 멕시코, 브라질 등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생산지라는 것, 그리고 공정무역 제품으로 인증받기 위한 절차에 소요되는 비용이 높아 정작 소규모의 가난한 농부들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공정무역 커피의 가격은 일반 커피보다 높은 편이지만 그 차익이 실제로 어디에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 데다가 오히려 제품 품질이 낮은 경우도 있다는 점 또한 문제로 꼽힌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 '페어월드프로젝트Fairworld Project'도 최근 발간한 2022 보고서를 통해 '제3자에 의한 공정무역 인증 이커피산업의불평등문제해결방안으로적절치않 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내용인즉슨 현재의 공정 무역 인증 메커니즘은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정무역 인증 은 500년간의 식민지화와 자본주의 위에 세워진 우리 의 식량과 무역 시스템의 근본적 부당성을 해결하는 일 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드러낸다. 지금의 인증 시스템에 는 여러 결함이 내재돼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들의 대표적인 지적은 공정무역 최저가격이 농민들의 생계소득 비용보다 낮다는 사실이다. 2018년 코코아의 최저 가격이 인상되자 공정무역 조건으로 판매되는 코코아 양이 감소했다는 '공정무역인터내셔널Fairtrade Inter- national'의 자료가 이를 증명한다고([ 그림 ] 참고).
또한 이들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권장사항을 제시했다. 인증 비용을 현재와 같이 농부들에게 계속 강요하는 대신 기업에 이전하고,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의 모든 단계에 거버넌스Governance뿐만 아니라 노동자 조직이 참여하는 것, 생계소득(실제 생 산비용에대한기준가격,농장에속한모든노동자의 공정한 생계비, 농부들의 이익)을 충족할 것, 인증자가 공급업체 데이터 공개를 포함해 공급 브랜드에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 등이 그 내용이다.
현재의 공정무역 인증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 은 공정무역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가능케 하고 합리적인 공급체계를 구성한다는 취지 자체는 좋으나,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의로운 취지 에 걸맞은 시스템이 갖춰지기 위해서는 공급망에 속한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