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제 커피 가공과정에 대한 변조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 왔는지 살펴보자. 다음의 첨가에 대한 분류는 멕시코 출신 커피 학자 ‘마누엘 디아즈’*의 분류법을 차용했다.
* : 세계적인 커피 컨설턴트. 생산국의 가공법을 체계화하고 분류하는 일을 해오고 있으며, 소비국에서는 커핑, 로스팅 등 플레이버 발현과 변조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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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일 등의 첨가물을 활용한 향
대표적인 예로 ‘커피 체리 과즙을 발효과정에 투입하는 것’이 있다. 발효과정에서 투입된 커피 체리 과즙은 커피의 발효 활성도를 높여, 발효 중 작용하는 미생물의 활동을 극대화한다. 이에 따라 생성되는 다채로운 향과 맛이 커피 향미에 특별함을 더한다고 볼 수 있다. 마누엘 디아즈 박사는 이에 대해 “당분을 첨가하는 것과 함께 커피 체리의 풍미를 더하는 발효방법이다. 그러나 당이 더 첨가되는 만큼 미생물의 활동을 제어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산’을 함께 첨가해야 한다. 이때 사용되는 인산은 커피 향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미생물의 활동을 제어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또한 포름산을 함께 사용해 젖산발효를 촉진하고 뷰티르산의 발효는 방지하며 발효온도를 낮추는 게 그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과즙을 첨가하는 건 커피 발효 중 작용하는 미생물의 활동을 왕성하게 함과 동시에 사용한 과일의 풍미를 덧입히는 작용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발효법의 성패는 미생물의 활동을 적절히 제어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가 다수 유통되고 있다. 본 기사 초반에 언급한 누구오 시그니처 또한 앞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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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베스트오브파나마에 출품된 망고즙이 첨가된 가공법의 커피에 대한 자료는 당시 옥션이 진행된 ‘stone works action’이란 사이트에서 제공됐으나, 현재 베스트오브파나마의 옥션 사이트가 별도로 분리되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
또한 ‘아마티보코리아’에서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로꼬Loco 시리즈’도 이러한 방식을 적용한 결과물이다. 로꼬 시리즈 첫 커피인 ‘스파이스 업Spice Up’은 커피 설명에 ‘다양한 허브와 과일로 만든 주스를 첨가했다’고 명기되어 있고, 가장 최근 론칭된 ‘스파이스 업Spice Up XX’에서는 기존 스파이스 업보다 주스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고 한다. ‘블레스빈’에서 들여온 ‘콜롬비아 메이팝 시리즈’ 역시 주스를 넣은 버전과 허브 및 향신료를 첨가한 두 가지 버전의 커피로 구성돼 있다. 두 시리즈 모두 콜롬비아에서 만들어졌는데, 지역과 환경에 맞는 각 농장만의 공법으로 가공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수입사는 이 가공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명기하고 있으며, 이는 커피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계통의 커피 중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소개된 커피는 ‘콜롬비아 엘 파라이소 리치Colombia El Paraiso Lyche’일 것이다. 2018년 아마티보코리아에서 처음 소개되어 <커피미업>, <커피리브레>에서도 취급하는 엘 파라이소 시리즈는 국내 스페셜티 커피시장에 큰 화제를 낳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주는 “엘 파라이소 커피는 ‘혁명’과도 같은 존재다. 커피 이름 뒤에 붙는 과일의 향미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느껴지니 고객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마케팅 효과도 뛰어나 매장의 커피 라인업에는 늘 엘 파라이소를 넣기로 했다. 모든 시리즈를 판매해본 결과, 고객들의 반응이 늘 좋았다”고 말했다. <인사이트커피> 강민서 대표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향을 인지할 수 있는 커피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손님들이 마셔보고 신기해하거나 재밌어하므로 고정적인 라인업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엘 파라이소 시리즈를 소개한 후로 커피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졌기에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업주는 “개인적으로 워시드 커피를 가장 좋아하지만, 시장의 트렌드에 발맞춰야 하니 가향커피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고객의 니즈다. 그러니 가능한 많은 선택지를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엘 파라이소는 특히 커피명에 과일 이름이 같이 쓰여 있어 고객이 더욱 관심을 가지는데, 실제로 주문해 마셔보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과일 향에 깜짝 놀라며 다음 방문에도 주문하더라. 충분히 경쟁력 있는 커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공을 거친 커피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있다. 다른 업주는 “인위적인 향이 강해 개인적으로 한 잔 이상 마실 수 없었다. 주변 업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응이 매우 좋다는데 우리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스페셜티 커피가 일반화되면서 더욱 큰 자극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었기에 탄생한 커피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로꼬 혹은 메이팝 시리즈와는 달리 가공법에 대한 설명이 없어 무엇을 첨가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하나의 논란으로 남는다.
이처럼 과일이나 차 등의 향을 활용한 커피가 하나둘 늘어가는 추세다. 콜롬비아 몇몇 농장들은 SNS를 통해 그 내용을 사진과 함께 공유하며 이를 하나의 가공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2. 효모 투입을 통한 발효 향 첨가
커피 가공과정 중 발효는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해 진행한다. 기존의 발효는 별다른 방법 없이 물 사용 여부에 따라 ‘웻Wet’ 혹은 ‘드라이Dry’로 구분하는 정도였고, 발효로 인한 오염 발생에 주목해 발효를 생산한 가공법 ‘에코 프로세싱Eco Processing’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4년 ‘멕시코 핀카 셰린 샴페인 이스트 발효 커피’가 소개됐다.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샴페인 이스트 발효’라는 키워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한동안 발효 중 이스트를 첨가한 커피는 시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지는듯싶었던 가공법인 이스트 발효는 2018년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만들어낸 이스트 발효 커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른 커피보다 좀 더 다채로운 특성을 가진 덕이었다. 지금은 엄연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2020년 현재는 수많은 이스트 발효 커피가 만들어지고 있다.
과테말라 산타펠리사 농장은 2019년 ‘맥주 이스트’를 넣어 완성한 커피를 소개한 바 있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에서도 다양한 이스트를 활용한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트의 종류를 명확히 밝힌 건 과테말라 산타펠리사 농장이 유일하다. 이곳의 이스트 발효 커피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
***라 불리는 맥주 효모를 투입한 후 72시간 발효했다고 한다. 이 커피를 사용하는 한 업주는 “다른 커피와 비교했을 떄 좀 더 다양한 향미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 에일맥주를 양조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효모로 에탄올의 생성뿐 아니라 균주의 종류에 따라 바나나, 정향 등의 향미를 만들어낸다. 통 혐기성 성질로 생존능력이 강하고 발효능력이 높다. |
해당 효모의 활용과 관련해 한국맥주문화협회 윤한샘 회장은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는 에일맥주의 발효에 사용되는 효모를 통칭한 균이다. 에일맥주에도 약 100여 가지의 세부 스타일이 있는데, 몇몇 맥주는 효모가 만들어내는 향미가 매력적이다. 커피의 발효에 맥주 효모를 투입할 경우, 효모가 만들어내는 향미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효모의 종류를 선택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커피도 좋아하기 때문에 맥주 효모가 만들어 낸 향이 커피에서 느껴진다면 꽤 매력적일 것 같다”고 했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2019년 8월 핀카 윌더 가르시아에서 무산소, 이스트 발효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2019년 10월호 98~103p 참조). 이 실험에서 완성된 커피로 세 번의 세미나를 열었는데, 이때 참석했던 <화이트셔츠커피> 류주혜 대표는 “이스트를 첨가한 커피에서 더 다채로운 향이 감지됐다. 이스트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자체가 매우 신기했다. 그러나 커피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향이라기보다는 커피에 덧입혀진 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스트를 참가한 커피에서 복합적인 향이 느껴져 처음에는 가장 선호도가 높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이질감이 들었다. 물론 커핑 점수로 따지자면 이스트 첨가 커피가 높을 수 있을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놀라운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스트를 첨가해 발효하는 방식을 가향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순히 점액질을 제거하려 진행했던 과거의 커피 발효에서 이스트가 특별한 향을 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으니 가향의 한 종류로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3. 보관법의 변조를 통한 향
향의 첨가 및 변조의 마지막 방법은 보관법을 달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무산소 발효’다. 산소를 차단한 상태에서 발효하는 방식으로 소위 말하는 ‘시나몬 게이트’의 핵심이기도 하다. 무산소 상태에서 발효를 진행하는 것은 단순히 혐기성 미생물의 활동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공자가 의도한 발효를 위한 필수적 조건을 조성하려는 방법으로 보는 게 좋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대해 <커핑포스트> 이치훈 대표는 “무산소 환경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다면 모든 커피에서 같은 향미가 생성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단순히 혐기성 미생물의 활동을 위한 방법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또 다른 변조를 위한 예고편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무산소 환경을 조성한 후 과일이나 주스, 이스트를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와 관련해 윌더는 “작년 여름 새로운 가공법을 시도해본 후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가공과정 중 무언가를 첨가해 커피를 완성하려면 산소를 차단한 환경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무산소 발효를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 발효통에서 진행한 커피도 출시된 적 있다. 오크통에서 발효한 커피는 오크의 향미가 덧입혀져 독특한 특징을 추가로 가졌으며, 스테인리스 발효 커피에서는 더욱 깔끔하고 깨끗한 산미를 느낄 수 있었다. 냉장고에서 ‘콜드프레소’ 발효를 거친 가공법의 경우 산소에 이어 온도까지 통제하는 방식으로. 발효 속도를 늦춤으로써 커피의 다양한 특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설계됐다.
결국,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향 첨가 커피의 탄생 배경을 유추해 보자면 더욱 특별한 향과 맛을 찾는 수요에 따른 개발이라 생각된다. 수십 년간 쉼 없이 커피를 생산해온 토양의 힘이 한계에 다다른 탓인지, 기후변화로 인한 커피 생산의 어려움 때문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더욱 특별한 향미의 커피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가공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수요에 부합하는 커피를 완성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첨가물을 넣어 향을 가미한다는 뜻의 ‘가향(加香)’ 대신 아름다운 향이라는 의미의 ‘가향(佳香)’으로 인식이 전환되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인 셈이다.
이번 기사를 위해 이야기를 나눴던 많은 업주와 바리스타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아마 가향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이미지가 특별한 커피의 판매와 마케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가향커피를 하나의 커피 장르로 정착시키고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재밌게 설명하는 것은 커피인들의 몫일 터. 커핑포스트 이 대표는 “장르를 구분하고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차후 등장할 새로운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기존 커피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주는 “가향이란 단어가 가진 이미지가 커피로 장난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이걸 고객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하지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커피인 만큼 그 가공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고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커피가 가진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라인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커피를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장르의 커피가 뿌리내린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커피시장이 자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21년에도 새로운 프로세싱의 출현이 기대가되네요
2021-01-15
좋아요(0)역시 가향하면 엘 파라이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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